STAXX 성장기

수상한 액셀러레이터

STAXX 2025. 6. 13. 16:06

어쩌면 STAXX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구독자 중에는, 아직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분도 계실 지 모르겠다. 처음엔 조금 서운했지만(?) 그도 그럴것이 STAXX는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일하고 있기에 정체성을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렵다. 예를 들어, STAXX 앞마당과 조금 더 넓은 마당(?)에서 플리마켓을 열기도 하고, 반려견과 즐기는 크리스마스 콘서트도 하고, 할로윈에는 지하실에 잭오랜턴을 숨기는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책모임을 가장한 구연동화(?)모임과 국가대표 경기 관람 모임도 있었다. “STAXX는 문화기획팀인가?”싶은데,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리가 했던 일을 좀 더 이야기 해 보자. STAXX의 시작은 창업가, 특히 지역의 창업가를 돕는 액셀러레이터다. 태초의 프로젝트 STAXX를 통해 지역에서 더 많은 창업가들이 소셜벤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했다. 또한 관광 스타트업 실증사업 운영, 브랜딩 역량강화 등 기업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기관, 지자체와 협력하며 일을 해 왔다.

이렇게 영역을 넘나들며 일을 하다보니, 언젠가 STAXX를 방문했던 누군가로부터 ‘액셀러레이터가 그런 일도 해요?’라는 질문을 받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마 거기엔 ‘왜?’라는 질문도 같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액셀러레이터에게는 낯선 일들을 STAXX는 지난 3년간 꾸준히도 벌여왔다. 최근에 들어서는 SNS와 뉴스레터를 비롯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도 하고 있다. 이번 아티클을 통해 STAXX라는 액셀러레이터가 벌이는 ‘수상한 일’들에 대한 의미와 이유를 돌아보며, 로컬에서 필요한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왜 STAXX는 이런 ‘수상한 일’들을 계속 해 왔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로컬에서 액셀러레이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액셀러레이터 뿐만 아니라, 특히 ‘로컬’ 액셀러레이터는 단순히 비즈니스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업의 성장이 가속화 될 수 있도록 돕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연결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가가 동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 모임을 만들고, 플리마켓을 열어 지역 주민과 함께 즐길 수 있게 한다. 같이 모여 책을 읽고 축구를 보는 일들이 엉뚱하고 수상하게 보여도 이런 시도는 결국 비즈니스가 사람과 함께 지속되기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생태계를 만드는 그 현장에서 STAXX가 얻게 된 레슨은, 관계는 단순한 인간관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장을 만들고 신뢰라는 든든한 자원이 된다는 것이었다.

 

관계를 만드는 시장, 마당장

STAXX는 지난해 2차례, 마당장이라는 이름의 로컬브랜드마켓(플리마켓)을 운영했다. 이런 마켓을 여는 일은 얼핏 어느 하루의 이벤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목표와 목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첫 마당장을 운영했을 때, 인근 지역에서 비슷한 이름의 플리마켓이 같은날 열렸다. 우리는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마켓을 열어야 할까를 고민한 끝에 마당장에 참여하는 브랜드(셀러)들에게 참여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활동이나 프로모션 같은 이벤트를 적극 권장했다. 마켓을 통해 브랜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판매하는 제품은 어떤 점이 좋은지를 소개하고 고객들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시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처음엔 그냥 제품을 가져와 판매하겠다고 말했던 브랜드(셀러)들은 우리의 제안을 듣고 농구공을 가져와 이벤트를 하거나, 화분을 가져오는 손님에게 분갈이를 도와주기도 했다. STAXX도 안쓰는 에코백을 모아 장바구니로 나눠주거나,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게임 이벤트도 열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산책을 하던 사람들도,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보고 온 사람들도 STAXX와, 다양한 브랜드들과 연결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작년 봄, STAXX의 첫 마당장

 

지역에도 다양한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지만 마당장은 관계를 통해 ‘이벤트’의 기능을 넘어서 창업가에게는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시장의 역할을 했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브랜드마켓에 참여하며 브랜드(셀러)들은 어떤 고객과 만나고 싶은지, ‘이건 뭐예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고민하며 서비스를 점검했다. 마당장에 참여한 셀러(브랜드)들은 시제품을 가지고 와 고객의 피드백을 직접 듣는다던지, 처음 해 보는 프로모션을 새롭게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셀러들은 자신감도, 시장성도 무럭무럭 키워나갈 수 있었다.

“여러 플리마켓을 경험했지만, 셀러가 이렇게 즐거운 플리마켓은 처음이었어요.”

 

마당장 운영을 마치고 장소를 정리하던 중 참여했던 한 브랜드(셀러)의 피드백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수상한 브랜드마켓에 참여한 사람이 이토록 즐거웠다니. 앞으로도 이 수상한 일들을 계속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신뢰로 연결되는 사람들

좋은 커뮤니티는 관계에서 시작하고, 좋은 관계의 반복은 ‘신뢰’라는 자산으로 축적이 된다. 좋은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역에서만 통하는 문장은 아니겠지만, 지역에서는 좋은 관계, 평판이 아주 중요한 자원이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일들로 인해 우리를 경험한 사람들이 만든 커뮤니티, 인적 네트워크는 ‘액셀러레이터’라는 생소한 역할을 지지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어느 창업가는 STAXX 책모임에 참여했던 지인의 소개로 창업가 지원 프로그램에 들어오기도 했고, 인근 지역에서 STAXX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최근 진행되었던 창업가 커뮤니티 상부상조소사이어티에는 의성에서 그릭요거트를 만들고 있는 창업가가 호스트로 참가했다. 상부상조소사이어티는 지난 해 6번의 게더링을 거쳐, 올해는 창업가의 취향을 중심으로 한 자연스러운 커뮤니티의 형성을 실험해보고 있다. 작년 여름 의성에서 두 명의 창업가가 게더링에 참여했었는데, 그 분들의 소개를 받아 상부상조소사이어티의 첫번째 호스트로 지원했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5주간 일주일에 한번씩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기차를 타고 모임에 오는 그 마음에는 내가 하고싶은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그래도 괜찮은 커뮤니티라는 안전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부상조소사이어티 호스트 프로그램 '나 사용법' 중

낯설고 새로운 일을 할 때에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경험자’의 한마디는 큰 설득력을 가진다. “STAXX가 한다고 하니까”라는, 분명히 경험에 기반하였지만 근거없는 믿음으로 이 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믿음은 단순히 좋고 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자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함께 하게 만들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동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STAXX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공간과 조직에 대한 장벽을 낮춰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고, 이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원 연결과 협력이 이루어지게 만들고자 한다. 이렇게 관계에서 비롯된 신뢰는 생태계의 기반이자, 액셀러레이터의 든든한 자산이 되어 실행력을 높이고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마저도 ‘액셀러레이터다운’ 일

그렇게 우리는 낯선 일들을 반복하며,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신뢰가 결국 비즈니스의 성장을 돕고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이런 성과의 축적이 눈에 보이지 않아 확신이 없었을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모든 시도들은 생태계를 느리지만 단단하게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해온 일들은 정말로 새로운 일이었을까?

이 낯선 일들은 전통적인 액셀러레이터의 역할과는 다르게 보였을 수 있지만 결국 비즈니스의 성장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고자 벌인 일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질문과 방법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 온 일들은 낯설어 보였지만 사실은 지역이라는 상황과 맥락에서 가장 ‘액셀러레이터다운’ 일이었던 것이다. 액셀러레이터로서, 비즈니스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역할 외에도 기반을 ‘넓히고’, 자원을 ‘연결’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익숙한 일들을 낯설게 풀며 그 방법을 실험해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상황과 맥락에 맞는 방식으로 질문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것이다. 조금은 수상해 보이지만, 그게 STAXX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