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붐은 온다…☆
‘로컬’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STAXX 뉴스레터를 보는 분들은 특히나 더 체감하고 계시겠지만요. 사실 저는 로컬이라는 아젠다를 알게 되고나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러다 살기를 마음먹은 사람이에요. 그러다보니 제 인생에 있어 ‘로컬’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중요한 ‘핫이슈’입니다. 하지만 문득 ‘나한테만, 우리 팀한테만 그런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로컬은 누군가에겐 삶의 방향을 바꿀만큼 강력한 아젠다지만, 또 누군가에겐 그저 멀고 낯선 이야기일 수 있으니까요.
로컬이라는 주제가 정말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이야기일까?를 고민하던 중 ‘두산인문극장’이 올해 주제로 ‘지역(LOCAL)’을 선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주제가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두산인문극장은 2013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예술과 인문학적 시선으로 풀어내는 기획프로그램입니다. 갈등, 아파트, 공정 등 그 해의 사회적 이슈나 인문학적 질문을 반영하여 주제를 선정하고 있어요. 두산아트센터의 관계자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소모되는 ‘핫 이슈’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유효한 성격을 지닌 ‘보편적 주제’를 고민하여 주제를 결정한다고 해요. 2025년의 주제인 ‘지역(LOCAL)’ 역시 중앙 집중과 지방 소멸 등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문제를 반영해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지역(LOCAL)’이라는 주제가 거대한 사회적 화두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인문예술의 영역에서까지 다뤄지기 시작했고, 이제 로컬이 일부 당사자 간의 고민으로 머무르는 것을 넘어 삶과 사회를 다루는 본질적인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입니다.
이 주제가 어떤 시선과 표현방식으로 다뤄지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시간을 내어 강연 프로그램과 전시를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지역(LOCAL)이라는 주제가 수 많은 도시인이 모인 서울의 중심에서 어떻게 해석될까? 너무 기대가 됐어요.
도시 한복판에서 만난 ‘지역(LOCAL)’
먼저 두산아트센터에 도착해서 전시(Ringing Saga)를 관람했습니다. 전시는 서울의 오래된 중심지 ‘종로’라는 공간에 쌓인 기억을 다양한 예술언어로 풀어낸 기획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지역’을 주제로 한 전시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건 ‘시골’이나 ‘지방’ 같은 좁은 의미의 지역(rural)이었어요. 그런데 이 전시는 ‘종로’라는 도심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의 기억과 흔적, 감각들을 보여주며 의미화된 공간이라는 ‘지역’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공간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관계성에 주목하는 전시를 보며 ‘지역’이라는 단어가 넓고, 입체적인 개념으로 다가왔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서 연강홀로 자리를 이동하여 박찬일 셰프의 <로컬푸드와 장소정체성> 강연을 들었습니다. ‘로컬푸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시나요? 강연에서는 ‘로컬푸드’란 단순히 지역에서 난 음식이 아니라, 그 장소를 살아온 사람들이 남긴 기억에 기반하여 서사를 획득한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섭취의 개념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함께 받아들이는 경험이라는 것인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지역과 음식이 얼마나 연결되어있는지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강연 내용 중, 부대찌개를 예시로 들어 설명해주셨던 게 재미있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부대찌개는 지역마다 다른 특징이 두드러지는데요, 예를 들어 송탄에서는 치즈를 넣는것이 특징이고, 동두천은 김치와 멸치육수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같은 음식이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은 단순히 그 지역의 식재료나, 자연환경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인물이나 서사를 기반으로 한 실리적인 이유 등이 영향을 미쳐 이렇게 다른 특징을 갖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를 이해하고 나니 어느 지역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맛과 영양을 흡수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장소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경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 - 로컬 아젠다의 확산
전시와 강연을 통해, ‘지역’이라는 말이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 서울에서 살며 일할 때 ‘지역’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방법은 행정구역이나 물리적 거리 정도로만 이해했었거든요. 그러다 경상북도 영주로 이주를 하게 됐을 때, 처음에는 단순히 서울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 경상북도 영주라는 지역에서 살아보는 일 쯤으로 가볍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다른 지역에 산다는 것은 삶의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더라고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시간을 사용하는 패턴,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 등 저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특히 저는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역할로 영주에 왔기에, 지역의 커뮤니티나 문화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고 이주한지 얼마 안됐을 때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지역이란 단순히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지역을 ‘장소’로만 보지 않게 되었고 관계와 방식, 서사와 의미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이와 동시에, 지역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도 깊이 체감하게 되었어요. 앞서 ‘지역’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서서, 그 안에 쌓인 기억과 의미로 구성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지금 한국 사회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대변되는 도시가 점점 더 거대해지면서, 그에 따라 지역에 대한 기억과 의미를 가진 사람들이 적어지고, 그만큼 지역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두산인문극장을 통해 로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소중한 경험을 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전히 도시 밖의 지역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의미있는 주제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역과 지역 간의 거리는 실제로도 멀고, 기회나 정서, 감각을 포함하는 심리적인 거리감은 심지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이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결국 지역은 계속해서 소외되고, 누군가의 삶이 축적된 공간들도 그 의미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로컬’이라는 아젠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로컬’이 특정 지역에서만, 특정 직업군 내에서만 다루어지는 주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기회를 연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동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로컬 붐은 온다, 정말로
이번 두산인문극장을 통해 ‘로컬’이라는 주제가 우리끼리만 공유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걸 체감하게 되어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저도 제 자리에서 ‘로컬 붐은 온다’고 믿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이 아젠다를 예술적으로, 인문학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로컬’이 낯설고 제한된 담론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시간과 기억이 만드는 의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요즘, ‘로컬’이라는 주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갈 거라고 믿게 되었어요.
‘로컬 붐은 온다’, 반드시 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