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올렸던 저의 눈물 겨운 취업 성공 후기.. 보셨나요? 그때는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쌩신입의 열정과 긴장이 가득했다면, 이번에는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더 의젓해진 1년차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매주 출장을 다니는 회사원으로서 나름 모험 같은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오늘은 그 1년간의 소감을 한 번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별건 없어요ㅎ 로컬에서 일하는 회사에 취직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까? 궁금했던 분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릴게요.
떠돌이 사무직
저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사실상 3도 2촌의 삶을 살고 있어요. 서울에 있는 임팩트스퀘어 본사에서 사흘, 영주에 있는 STAXX나 다른 출장지에서 이틀, 이렇게 반복되는 패턴이 어느새 제 기본 루틴이 되었죠. 이 생활을 1년 넘게 하다 보니 저 자신은 크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왜냐면 저희 팀원들은 다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일정으로 다니시는 분은 거의 없거덩요. 그래서 회사 안에서는 “다 그렇지 뭐~”라며 일하지만, 막상 친구들이나 가족들한테 이야기하면 반응이 다릅니다. “오늘은 영주, 내일은 대구, 다음 주엔 공주!” 이렇게 말하면 다들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입장에서는 저는 그냥 직장인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떠돌이 사무직’(;;)쯤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신기하고 좋아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병든 닭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짐 챙기고, 기차 타고, 회의하고, 다시 이동하는 것의 반복이거든요.
사실 처음엔 이게 과연 일반적인 회사 생활일까 싶었어요. 매일 같은 자리에 출근하는 것보다, 기차 한 구석이 제 자리일 때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어느 순간부터 ‘아, 나는 그냥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직장인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매번 다른 지역을 오가며 일하는 것 자체도 일종의 직업적 정체성 아닐까요?
출장 아티스트로서의 역량 습득
제가 1년 동안 일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바로 ‘국내 출장’. 이거슨 아주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저의 소중한 역량이자 나름의 자랑거리랄까효…? 구체적으로 제가 어떤 역량을 얻었는지 설명해보죠. (엣헴)
1. 누구보다 빠르게 짐 싸기
바리바리스타
태생이 바리바리스타인 저는 원래 1박 2일 여행을 가더라도 커다란 여행 가방을 빵빵하게 채워가기 마련이었어요. 혹시 몰라 우산도 챙기고, 혹시 몰라 물티슈도, 혹시 몰라 머리끈도 3개, 혹시 몰라 갈아입을 옷도 하나 더, 혹시 몰라 보조배터리도… 혹시 몰라병에 걸렸던 저는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짐을 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거운 짐을 질질 이고 지고 끌고 다녔었는데요.
취업 1년 만에 출장 아티스트가 된 저는 이제 더는 짐 때문에 괴롭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옷과 생필품으로 짐 싸기 5분컷도 가넝. 그리고 출장이 잦다 보니 옷도 자연스럽게 출장 친화적으로 바뀌었어요. 막 구겨서 가방에 넣어도 주름 덜 생기는 옷, 자주 세탁할 필요 없는 바지, 맨날 돌려입는 기본 티셔츠 등..ㅎㅎ 혹시 제가 매번 옷을 돌려 입는 것 같아도 모른 척 해주세요.
2. 귀신 같이 시간 맞추기
이 능력은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 우리 팀의 엄마아빠에 비하면 아직은 초보인 수준이지만, 저 또한 어엿한 팀의 막내로서 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기차가 9시에 출발한다면, 여러분은 언제 플랫폼에 도착하실 건가요? 저는 입사 초반 인생 첫 출장 ‘그 사건’ 이후 굉장한 불안감을 갖고 10분 전부터 플랫폼에 도착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입사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어느새 기차 도착 3분 전에 역에 도착해도 ‘딱 좋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분야는 실장님 전문인데요, 저희 실장님은 9시 기차를 9시 1분에 타는 능력도 갖고 계셔요. 이건 아마 실장님 만큼의 경력이 쌓여야만 가질 수 있는 능력이겠쬬?ㅎㅎ)
그리고 저에겐 다른 팀원 분들도 인정하는 능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KTX에 앉자마자 기절한 다음 제때 내리기’. 저는 기차에 앉자마자 5분 안에 기절한 후 종착역 직전 눈을 번쩍 뜰 수 있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분들은 다들 “방금까지 자고 있었는데… 잘 내렸네?”라며 인정을^__^ 그렇게 숙면 아티스트가 되,,,
숙면 전 기차에서......
3. 전국의 맛집 수집하기
출장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밥이지요. 하도 영주를 들락날락 하다보니 이제 영주에 가면 자주 가는 식당이 생겼고, 제 지도 어플에는 매번 타지역 출장을 갈 때마다 별표가 추가된답니다.
이거 실제 제 지도입니다... 리스트 필요하신 분 연락 주세요^^
이렇게 쌓인 맛집 리스트가 제 개인적인 출장 보너스예요. ‘오늘은 뭐 먹지?’를 고민하다가 의외의 보석 같은 집을 발견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거등요. 어느 지역에 가도 내가 가본 맛집이 있다는 거.. 아주 멋지지 않나요?ㅎㅎ
대구 출장 중 만난 돼지감자 뻥튀기
직장인 꿀팁 공유합니다
1년 동안 일하며 출장이 멋있어 보인다는 건 환상에 가깝다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취업 전에는 ‘출장’이라 하면 왜인지 서류가방을 매고 바쁜 걸음으로 여기저기 다니는 멋쟁이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를 상상했거든요. 그치만 실제로는 매일 ‘피곤해 죽겠어요….’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살아간답니다…ㅎ
커리어우면 상상편 그리고 현실의 나
그래도 나름 1년 동안 일을 하며 얻은 꿀팁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직장인-체력=0
운동하세요 여러분… 매일 앉아 계시는 사무직이라면 더요…. 특히 저처럼 로컬에서 일한다는 건… 체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일주일에 최소 하루, 때로는 3, 4일까지도 출장을 갈 수도 있거든요. 물론 기차에서 편하게 앉아 이동하지만, 이동하는 것 자체로도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이 들고 때로는 운전을 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다녀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근데 이 상황에서 체력까지 없다면 출근 → 퇴근 후 기절잠 → 출근 → … 을 무한반복하게 되는 가슴아픈 일이 일어날 것이여요. 제 인턴생활이 그랬거덩요. 헬스 시작하고 저의 성공시대 시작되었답니다.
두 번째: 가깝고도 먼 우리 42
출장을 가면 팀원들과 하루 종일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도 같이 먹고, 심지어 숙소도 같이 쓰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꼬옥 필요한 사람들에겐 조금 힘들수도 있어요… 다들 안 믿으시겠지만 저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잠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온다던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면서 멘탈 관리까지 챙겨가며 일해야 해요! 일이 바쁘다보면 스트레스 관리에 소홀해지기 쉬운데 그럴 때일수록 더더욱 잘 챙겨야 하는 정신머리…. 이걸 인턴 때 잘 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세 번째: 나는 공주고, 이건 여행이야
출장을 오직 일만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지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출장을 작은 여행이라고 여기려고 합니다. 출장지에서는 밥도 먹고, 풍경도 구경하고, 커피도 한 잔 하고, 가끔은 맛있는 걸 사오기도 해요. 그렇게 지역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면, 순간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소도시에서는 복잡하거나 붐비는 느낌을 잠시 잊고 있다가, 청량리역에서 인파에 휩싸여 지하철을 타면 대도시라는 느낌이 확- 와닿거든요. 이렇게 보면 출장은 일이자 동시에 여행이 되기도 하는 거죠. 돌아오면 몸은 힘들지만 잠깐 여행 다녀온거다- 하며 행복회로를 돌리면 어느새 다음 출장도 기다려지는 마법이…!
로컬에서 취업을 한다는 것은
앞으로 몇 년을 이런 패턴으로 살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행복 회로를 아무리 돌려도 몸이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패턴이 저한테는 꽤 잘 맞는 것 같아요. 매주 이동하는 게 버겁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상황이 늘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앞으로 더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일하고 싶…다고 말하면 진짜 그렇게 될까봐 약간 두렵지만 용기있게 내뱉어 볼게요.
저의 출장 이야기는 STAXX 인스타그램에도 계속 올라올 예정이니 지켜봐주세요. 그럼 안녕~